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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거리두기]‘감정적 투표’는 정권을 부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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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6-01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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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진짜 민주공화국인지 그리고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표일이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에 명시된 이 문장은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 이 말을 빈번히 사용하면 할수록 입에 발린 상투어가 되는 역설은 모호한 상징성 때문이다. 이 말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투표’뿐이다.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혁명과 쿠데타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민주 사회에서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투표이다. 현대적 혁명은 오직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급격한 변화인 혁명은 언제나 ‘극단적 감정’을 수반한다. 이제까지 감히 저항하지 못했던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혁명적 감정이다.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혁명에 참여하지 못한다. 감정은 혁명의 동력이다. 이것저것 따지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이성은 근본적으로 폭력을 부정하는 까닭에 쉽게 혁명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독려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평화적 정권 교체의 민주적 수단인 투표는 결코 혁명적일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는 본래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이다. 우리는 후보자가 우리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비전은 있는지, 제시한 비전을 이행할 수 있는 추진력은 가졌는지, 그리고 선거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정치적 약속을 지킬 최소한의 정치적 도덕성은 있는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당위는 언제나 당위일 뿐이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표를 던진다.
감정은 의사 결정 과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뇌 활동의 극히 일부만이 의식적 성찰 수준에서 작용하고, 뇌 활동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평가와 감정으로 구성된다. 감정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그리고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지 그른지를 알려준다. 감정 선택 이론에 의하면 유권자는 분노, 두려움, 희망 등의 감정에 따라 투표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적 정서를 건드리는 사건이 많거나 그 영향이 큰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투표할 경향이 크다.
이번에도 감정적 선택 할 경향 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정치적 감정이 들끓는 상황에서 치러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일종의 혁명적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매우 엄혹했던 군사 독재 시대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실패한 계엄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데 대한 분노에 불을 붙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의힘은 이런 혁명적 정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계엄 사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보수 세력을 응집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잃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 정당 지지’의 성향을 보인다. 그것은 사람들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기보다는 반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저지하기 위해 투표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이러한 경향은 정책보다는 감정에 기반한 투표를 유도해 결국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우리는 이번에도 감정적으로 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후보자들의 비전과 정책 공약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 투표’보다는 ‘감정적 투표’의 개연성이 크다는 징후이다. 실제로 후보자들이 내세운 정책들은 미래 지향성과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다. 시대 전환기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인식과 성찰과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이라기보다는 표를 끌기 위한 포퓰리즘적 공약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내란 세력에 대한 심판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 후보의 범죄와 비리 혐의를 강조한다. 적대적 증오와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번에도 피할 수 없는 감정적 투표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1987년 체제’가 시작된 이후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더 악화시키는 역설적 현상을 경험했다.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이 가장 무능하고 타락해 오늘의 사악한 진영 정치를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따른 책임은 제대로 지지 않고 보상만 열심히 챙기는 정치인들은 국가의 미래보다는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 이기적이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회의원들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혁명적 감정으로 투표했지만, 돌아온 것은 언제나 정치를 부패시키는 기득권 세력의 보존이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잘 선택하면 정치를 개혁하고 사회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희망은 늘 절망적인 좌절로 끝났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 정권도 사회통합에 실패했고, 절대적인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협치의 모델을 제시해주길 바랐던 윤석열 정권도 처참하게 끝났다.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는다. 우리는 새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미래 사회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면, 우리는 투표장에 가기 이전에 ‘미래’를 성찰해야 한다.
미래 예측하고 합리적 선택 해야
우리 선택의 기준은 두 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심판을 근거로 선택하는 것이다. 과거 정권이 과연 정치적 약속을 지켰는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한다. 현재 탄핵을 주도한 내란 세력에 대한 심판 정서는 이 모든 물음을 덮어버린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감정적으로 투표할 경향이 크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출 이후의 미래 상황을 미리 그려보고 투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지지하지만, 지지하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 선택이란 본래 나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따져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선택하려면, 우리는 대통령 선출 이후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선택의 결과는 적어도 향후 5년 동안 지속된다.
우리에겐 세 가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 차이로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거의 모든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절대 의석을 차지한 데다 행정부마저 장악한다면, 통치 권력에 대한 어떤 견제도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진다. 우리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절대권력을 자제하고 사회를 통합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길 기대할 뿐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국민의힘이 기사회생하는 경우이다. 현재의 파국적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정당이 재집권한다면,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적대적 진영 정치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이재명 후보의 승리가 압도적이지 않으면서 보수 진영의 표가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로 의미 있게 갈리는 상황이다. 이 경우 선거 후 보수 세력이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새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국민적 저항의 공간이 열린다.
사람들이 이런 미래의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선거에 임할지 아니면 우선 바뀌어야 한다는 정서에 따라 감정적으로 투표할지는 모를 일이다. 감정적 투표는 단기적으로는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견제 장치를 약화하고 부패를 초래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정책보다는 감정에 기반해 투표할 경우, 비민주적인 정치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이는 언론 자유의 제한,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일이지만, 그 전에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전 정권이 보여준 것처럼 자제하지 못하는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면서 감정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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