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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장 대신 하늘을 선택한 노동자들···“노동자 목소리 듣는 대통령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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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6-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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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달 29~30일 투표 열기는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시민들은 땡볕에 기다려가며 투표권을 행사했다. 같은 시기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 공장과 서울 중구 한화빌딩·세종호텔 앞엔 투표장으로 향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쨍쨍한 하늘 위를 지켰다. 투표권 대신 노동권을 택한 이들은 각자의 하늘에서 ‘노동 차별 없는 세상’을 외쳤다.
1일 기준으로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은 511일째,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109일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79일째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다. 길게는 500일 넘게 투쟁을 하고도 이들은 ‘하늘’에서 이번 대선을 맞이한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모두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 모든 노동자가 평등한 세상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표장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내란을 함께 이겨내고 맞는 선거인데 투표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지난해 1월 일본 니토덴코 기업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옥상에 올랐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1일로 세계에서 가장 긴 고공농성 기록을 갱신했다. 앞서 김재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이 세운 510일의 기록을 넘어섰다. 앞선 기록도, 이번 기록도 모두 한국에서 세워졌다.
고 지부장도 “2017년 대선 때도 고공에 있느라 투표를 못 했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돼서 답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고 지부장은 2017년 4월13일 광화문의 한 빌딩 광고탑에 올라 27일간 정리해고 철폐 등을 요구했다. 그해 5월9일 제19대 대선이 있었고 고 지부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던 5월11일 고공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로도 세종호텔은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고 고 지부장은 지난 2월 두 번째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김 지회장은 “국민의 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쉽긴 하다”라면서도 “투쟁도 투표처럼 시민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사회에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의 고용 안정 보장과 상여금 복원 등을 요구했지만 원청인 한화오션이 단체교섭에 성실히 응하지 않자 30m 높이의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랐다.
대선 후보 대부분은 선거 운동 중에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외면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만 고 지부장·김 지회장·박 수석부지회장을 차례로 찾았다. 고 지부장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전태일기념관엔 가놓고 바로 근처에 있는 김형수 동지는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1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김 지회장이 농성 중인 한화오션 빌딩과 3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김 지회장은 “민주당이 약속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도 허점이 많다”며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노동 약자들이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공약과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동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내란 이후의 사회는 다 같이 행복한 나라여야 한다”며 “정치가 높은 곳만 보고 낮은 곳을 볼 줄 모르니 못 사는 사람은 계속 못 살고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잘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누군가를 짓밟고 독식하려는 욕망이 내란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다음 정치는 강한 자의 독식이 아닌 약한 자들의 연대와 단결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더 나은 사회’에 발 디딜 날을 꿈꾸고 있다. 고 지부장은 “땅에 내려가면 시원하게 냉탕도 들어가고 집에 가서 가족들 옆에서 잠들고 깨어나고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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